[특별기획] 임진왜란 전적지 답사

 초량목해전지


초량목해전지는 부산 영도다리 아래의 좁은 해협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 싸워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을 기억하지만 임진왜란 발발 첫해인 1592년 10월  5일(양력) 부산에서 벌어진 부산대첩은 상대적으로 크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그날 이순신함대는 부산진성과 그 외성인 자성대 앞 포구를 들락거리며 종일 전투를 벌여 정박해 있던 적선 470여 척 중 100 여척을 격파했다. 적의 소굴로 과감하게 쳐들어간 격전이었으며 결과는 조선수군의 대승이었다.

부산대첩을 좀 더 세분해서 들여다보면, 1592년 10월 5일 오전 일찍 이순신이 지휘하는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부산포로 진입하기 직전 초량목에서 적의 대선 아다케 부네(安宅船) 4척을 격파했다. 초량목은 지금의 영도다리 아래 협수로를 말한다. 현재 초량이라고 알려진 부산시 동구 초량동은 신초량이며, 구초량 또는 원초량은 용두산 아래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영도 섬으로 건너가는 좁은 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량(梁)이라는 지명이 들어가는 곳은 육지와 섬 사이 또는 섬과 섬 사이의 협수로를 말하며, 물때에 따라 조류가 급히 흐르는 지형이다. 예를 들면 명량은 전남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협수로이고, 노량은 경남 하동군과 남해도 사이의 협수로다. 통영반도와 거제도 사이의 견내량도 같은 성격의 지형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진을 두고 서진하는 적을 봉쇄하는 작전을 펼칠 때 견내량을 지켰다. 

그 외에도 원균이 패배한 칠천량은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의 좁은 병목이며, 착량은 통영 도심과 미륵도 사이의 해저터널이 있는 곳이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 사이의 협수로를 이순신 장군은 고리량 또는 오리량이라 했다. 전남 완도와 해남군 사이는 달량진왜변이 있었던 달량이며, 전남 강진과 고금도 사이는 마량이다. 

자갈치 아지매 석상

2019년 설날 직전에 초량목해전이 있었던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자갈치시장 앞과 그 동측으로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그날의 격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갈치 아지매' 석상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10월 5일은 부산대첩을 기리기 위하여 부산시가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한 날이다. 작년 4월에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이사장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가 출범하여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1세기 부산 발전을 위한 일에 봉사하고 있다. 부산시도 부산대첩기념사업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최근에 조례를 제정 공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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