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거울'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거울

<출처: unsplash.com>




[뮤즈: 심규락 작가]


<비결정성 고체를 통한 자구행위: 조각의 무게> 


핏기는 못해도, 광 섞인 시침엔 관통을 겪는
쉽사린 아니어도, 언젠가의 온상으로 인해 도체가 되는
이런 명도와 그런 도치의 존재

가혹히도 여실하여 노려보기엔 차마
구십 도의 마방진 속 무구한 전신(前身)들이
그 추한 전신(傳神)을 구(口) 한 말 혹은 구한(仇恨) 말 삼아
전신(傳信) 하는 광경은 정말 폭행이다

그 안쓰럽게 어두커운 뒷덜미에 수은색 월식을 가해도
전신전령(全身全靈)에 있어 가해는 가해다
지상의 모든 뜨거운 구름이 내려앉은
그 네모난 혹은 네 못난 분침을 놓아 주거라

가장 이란 단어가 더는 무마의 뒷걸음이 아니라면
이제는 좌우 수평이 아닌 앞으로 가자
저 거울이 수십 년간 침해해온 내 들숨을 위해
이미 조각난 나의 앞이 저런 나의 앞이 될 수 있게

그것만이 영(0)이든 령이든
미뤄둔 자신이 자신 있는 상이 되는 길

파산과 파탄보다도 더 경애롭게 거친 웃음살은
저 금이 간 과거 또는 미래를 빼닮음에
마침내 그 효력이 발휘된 위법성 조각 사유(違法性阻却事由)

손끝의 나는 사인(死因)의 사인(使人)이며
또 손끝의 나는 사인(私人)으로서 자구행위를 하노라
세상 모든 것들이 X가 된 지금 시점 서

참으로 웃기기도 하지
각진 내가 나를 살렸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
가혹히도 예쁜 처자식이 없는 지금
두 명의 나와 하나의 올가미가 하나가 되는 이 방

결단력 없을 줄 알았던 
그 비결정성 고체에서 나리는 액체
높이 올라간 만큼 낮게도 내려온다
하나씩, 한 조각씩, 혹은 한 명씩

툭.

옆집 아저씨는 아마 그렇게 y 축을 담당하셨을 것이다




[뮤즈: 류재은 작가]


<그리하여 흘러 보낸 것들>


그녀는 가만히 유리잔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미간에 잡힌 주름과 씰룩이는 입꼬리. 금방이라도 버럭 소리를 지를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내 거울을 들어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거울인지. 눈 밑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항상 인상을 쓴 탓인지 이마엔 세로 주름이 깊게 파여있었다.

스무 살. 싱그럽게 빛나던 자신의 얼굴을 생각하던 그녀에게 자신의 모습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를 고민하던 그녀는, 내가 언제부터 거울을 보지 않았지로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아마도 내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재밌는 일이 가득하던 이십 대 때는 수시로 나의 모습을 바라봤었다. 스스로 꽤 예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삼십 대 때까지만 해도 드물지만 거울을 보며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지 확인하곤 했었는데... 사십 대가 된 지금은 거울을 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나지도 않을 지경까지 온 것이다.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모습을 더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웃기게도 자신이 백설공주의 계모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거울아, 거울아. 이렇게 늙어도 나는 예쁘지?”

그때 그녀는 거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40년 만에 들은 목소리니 그제서야가 맞을지도 모를 거울의 목소리는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아가씨야, 당신은 분노에 휩싸인 중년 부인이 되어서야 나를 찾았군요. 분노에 휩싸이기 전 나를 찾았다면 당신은 여전히 아리따운 아가씨였을 것을... 당신은 분노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당신의 아름다움을 흘려보냈군요.”




[뮤즈: FYDFYD 작가]


<언니? 엄마! 언니. 엄마.>

“어머, 사촌 언니야?”
“언니라 그래도 믿겠다!”
“와, 너희 어머니 진짜 미인이시다!”

시장에 갈 때나 식당에 갈 때에, 심지어 집 앞 슈퍼에서도. 화장도 안 한 수수한 민낯이던, 조금은 단장을 하셨던. 언제나 우리 엄마는 언니였다.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사랑받고 자란 어린아이라면 모름지기 “우리 엄마 이쁘죠?”를 자연스레 외칠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조금은 으쓱하면서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코흘리개를 지나 제법 머리도 크고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을 무렵도, 민증을 들고 첫 술을 살 때에도 우리 엄마는 여전히 언니였다. 여전히 조금은 으쓱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 너 아빠 닮았구나?”

사진을 보여주던, 직접 만나 인사하던. 언제나 우리 엄마는 언니였다.
괜시리 서러웠다. 퇴근하고 들어오시는 아빠를 보곤 괜히 심통이 났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는 왜 날 가져선 아빠 얼굴만 봤어! 장동건 같은 사람 사진도 좀 주기적으로 보고 그러지!”
“느이 아빠 얼굴이 어때서 그러냐~”
“아 몰라!”
-
오랜만에 반차를 쓰고 엄마랑 쇼핑에 나섰다.

“어머, 딸이 아주 훤칠하네~ 어머니 좋으시겠어요~”
“얘가 좋은 거만 쏙 빼갔죠~ 얘, 미래야. 이거 입어봐라.”
“예쁘네. 엄마도 입어봐.”
“어머님도 진짜 잘 어울리세요~”
“엄마 아직 안 죽었다~”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언니다.




[뮤즈: 김다빈 작가]


<전사의 마지막 싸움 - 1편>

동준은 크림슨 메디컬 센터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상체에 붙은 패치를 통해 심전도 그래프와 전신 스캔이 이뤄졌다.
“김동준 선수, 키 188cm에 110kg. 네, 신장과 몸무게 체크되었습니다.”
동준은 몸에 붙은 패치들을 떼어내고 거울을 바라봤다.
메디컬 상태를 체크하는 의사의 두 배는 넘는 거구의 덩치에 몸 이곳저곳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나도 참 오래 했네.”
“김동준 선수 메디컬 테스트가 이번이 31번째던가요?”
어느덧 자신도 초창기부터 링 위에 올라 10년 가까이 뛴 베테랑의 격투가가 되었다. 
“요새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담당의는 선수의 말에 정밀 검사를 고려하며,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동준은 여전히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그러다가 대뜸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켰다.
“이게 아마 4전째 경기였을 거요. 7 바늘 꿰맸는데, 엄청 부풀어 올랐지.”
“기억납니다. 그때 그 경기 링 닥터가 저였으니까요.”   
“그 뒤로 두 번은 더 찢어졌수. 왼쪽 눈가에만 도합 30 바늘은 꿰맸어.”
동준의 말에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그를 불렀다.
“김동준 선수, 이쪽으로 와 주시겠어요?”
담당의에 부름에 의사 앞에 앉은 동준이었다.
담당의는 모니터를 통해 그동안 31전의 승부 속에서 벌어진 동준의 부상 목록을 읽어나갔다.
“왼쪽 눈가에 30 바늘, 오른쪽 눈가도 14 바늘 꿰맸습니다. 이마에도 20 바늘에 오른쪽 귀가 한 번 떨어져 나가서 접합 수술도 했었고요.”
“내 얼굴이 프랑켄슈타인이지 완전.”
그동안 숱하게 얼굴에 펀치와 킥을 맞아 생긴 전장의 흉터들이었다.
“치아 2개 결손에, 뇌진탕을 4번 겪으셨죠?”
“실신 KO패가 4번이었고, 3번째 때, 어금니가 세로로 쪼개졌다고 다 빼버렸을 때...”
“후방 십자인대 파열에 오른쪽 어깨 회전근 수술... 사실 이제는 정말 관리가 필요할 때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떠오르더라고요. 몸에 브레이크가 걸렸나 싶어서.”
한때는 허리 위에 휘황찬란한 황금 벨트를 찬 적도 있었고, 해외에서 경기를 뛰며 파이트머니를 달러 뭉치로 받아와 금의환향한 적도 기억났다.
“김동준 선수, 만약 경기가 잡힌다면 지금의 메디컬 테스트로 경기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쇼.”
동준은 병원을 나설 때 병원 로비에 있는 거울을 보며 다시금 자신을 돌아봤다.

***

“헉...헉....후우~”
아침부터 로드워크로 10km를 달린 동준은 한강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11월의 새벽 날씨에도 땀으로 목욕을 한 동준이었다.
“수고했어. 김동준 선수 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공원 벤치로 다가 온 민아가 음료수를 동준에게 건네줬다.
“땡큐! 나 올 걸 알고 있었어?”
“내가 네 운동 코스 한두 번 따라갔니? 이젠 몇 시에 어디서 뛰는지도 기억한다고!”
민아의 미소에 동준 역시도 웃으며, 1.5L의 이온음료를 따더니 원 샷으로 쭉 들이켰다.
“기삿거리 좀 쓰게 도와줘, 다음 경기 언제 뛸 거야?”
“모르지. 아직 단체에서는 이야기 없었어.”
“만약에 경기 잡히면 무슨 체급으로 갈 건데?”
동준은 원래 93kg 이상의 헤비급에서 격투기 선수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점점 평균 체급이 늘어나는 헤비급에서 결국 한 체급을 낮춰 라이트 헤비급에서 뛰면서 매 경기마다 15kg 이상의 감량을 해 왔다.
“몰라, 돈 많이 주는 쪽 선택하지 뭐.”
“그렇구나...”
“왜? 링 위에 올라갔으면 좋겠어? 나 처맞는 거 사진 찍게?”
“내가 경기 때마다 대포 카메라로 너 숱하게 찍었는데, 원한다면 더 찍어줄게.”
인터뷰 따내던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선수로 인연을 튼 지 5년이 지난 사이였다.  
그동안 희로애락을 전부 봐 왔고, 지금도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아는 언제 봐도 고생하는 모습에 땀투성이의 남자친구를 안아주었다.  
그 뒤로 5km를 더 뛰어 15km를 채운 동준은 이제 체육관으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돌렸다.
“!?”
그 순간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며 휘청거리는 동준이었다.
“어어? 괜찮아요?”
길 가는 사람들이 놀라서 물어볼 정도로 몸을 못 가누는 동준이었다.
“아, 됐어요. 별 일 아니야.”
머리를 흔들면서 다시 일어난 동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동준은 체육관을 올라가는 계단에서 벽에 설치된 거울을 바라봤다. 
23살 때 올림픽 대표 출신의 파이터 김동준도 이제는 10년 차의 베테랑 노장이 되어 있었다.
1년에 6-7 경기도 뛰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의 스케줄도 절대 여유 있다고는 하지 못했다.
“후우-”
동준은 체육관에 들어오자마자 땀복부터 벗으면서 냉장고에서 얼음물을 머리에 들이부었다.
“아, 형님. 왔어요?”
“오늘 몇 키로 뛴 거예요? 엄청 달리셨나 보네.”
“15km.”
같은 체육관의 동료들의 반응에 동준은 옷을 갈아입으며 링 앞에 앉았다.
“얘들아. 형 진짜 옛날 같지가 않다.”
“왜요? 10km 넘어가니까 막 헛것이 보이고 그래요?”
동준은 대답 대신 글러브를 머리에 던져버렸다.
“그러니까 같이 훈련하자니까요? 형님 아직 한창이잖아!”
한 명은 세계 라이트헤비급(93kg) 탑 랭커 슈퍼스타 서지원, 다른 한 명은 같은 단체의 웰터급(77kg) 챔피언인 최우진이었다.
“아, 몰라. 진짜 고향 내려가서 호프집이나 하나 차리고 싶다.”
“민아 누님이 슬퍼할 걸요? 자기 남친 취재거리 할 거 없어진다고.”
“걔네 잡지사에 너희 둘 메인으로 인터뷰 따준다고 말하면 되겠지. 아무튼 오늘 좀 그랬어.”
여느 때와 같은 농담 따먹기가 아니란 분위기에 지원과 우진은 큰 형님의 상태를 보기 위해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형님, 요새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동준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의욕이 사라졌어.”
동준의 말에 우진이 테이핑을 하며 넌지시 말했다.
“난 다음 경기 언제 잡히나 몸 달아 죽겠던데... 형, 하은이가 내년이면 학교 가요.”
27살에 나이에 딸이 벌써 8살인 우진이 녀석을 보니 동기부여가 아주 중요하다 생각했다.
“저도 요새 경기 안 잡히나 조마조마해요. 나이키 말고 새 스폰 구하고 싶은데, 경기를 뛰어야 뭐가 붙지.”
“아오! 이 기만자 새끼!”
지난번 5년 60억짜리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지원이 또 스폰서 타령을 하자 우진과 동준 모두 손에 집은 걸 지원의 머리로 집어던졌다.
“동준이 어디 있냐? 잠깐 사무실로 와라!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뛰고 쉬고 있던 동준은 관장의 부름에 헤드기어를 벗고 링에서 나왔다.
“형님, 경기 잡힌 거 아니에요?”
“맞나 보네. 관장님이 직접 부르신 거 보면!”
우진과 지원은 엄지를 올리며 동준에게 건투를 빌어줬다. 

“애너하임? 저하고요?”
“그래, 그 녀석과의 매치 제안이 들어왔다.
루이스 애너하임(Louis Anaheim)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미국의 XFC에서 승승장구하다가 4경기 100억이라는 특급 대우로 이 곳 NFCC 단체에 오게 된 격투가였다.
키 205cm에 123kg. 정통 백인 타격가로 북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번 산토스 전 이후로 애너하임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랭크를 올려야 된다. 그래서 랭킹 2위 조셉 티어맷(Joseph Tiamat)과 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을 준비하고 있었지.”
관장의 설명에 매니저 한영도 현재 도착한 문자를 보면서 거들었다.
“어제 티어맷이 훈련 중 부상을 당했다는데, 검진 결과 경추 부상이라는군요. 3주는 걸린다나?”
2주 뒤의 경기인데 3주간 부상이면 사실상 무산된 경기였다. 
“내가 티어맷 대신 땜빵으로 뛰어 줄 수 있냐는 제안이겠군요.”
“파이트머니로는 그쪽에서 2억 5천 제안했다. 메인이벤트 매치 보너스도 따로 있고.”
파이트머니와 보너스 제안만 보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 당장 준비해서 2주 동안 헤비급 매치를 준비한다면 몸 만드는 시간도, 타격 연습도 처음부터 준비해야 됐다.
“어떻게 생각해?”
“애너하임 대관식 앉히기 전에 나를 떡밥으로 쓰겠다는 거죠.” 현재 동준의 헤비급 랭킹은 탑 10 랭커들의 말석인 10위. 아래 체급에서 갓 올라온 상태인데 목돈 한 번 쥐어줄 테니 단체에서 밀어주는 선수에 대타로 나와 달란 것이었다.
“그래서...힘들겠지?”
“일단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어차피 저 말고도 여러 명한테 대체선수 제안 보냈을 거 아니에요?”
“그래,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겠다. 일단 내일모레까지는 답장을 줘야 한 다는 말에 동준은 관장실을 나와 곧바로 샌드백으로 향했다.
 
***

동준은 하루 종일 타격 연습과 그라운드 스파링, 그리고 체력 단련에 몰두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한강공원을 달리고, 체육관과 공원만을 오갈 때, 동준은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와 뻗어버렸다.
“내가 뭐 하는 건지...”
아직 경기를 뛰겠다는 확답은 안 했지만, 서서히 몸을 예열시키고 있는 하루하루였다.
동준은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자신이 대타 선수로 나와서 루이스를 잡는 상상을 해 봤다.
일단 두둑한 파이트머니와 보너스, 메인이벤트 경기에서 보여준 기적 같은 업셋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주가가 올라갈 것이다. 
5년 전 이후 멀어진 헤비급 타이틀 전선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그동안 사라져 껍데기만 남은 몸에 다시 불씨를 지필 것 같았다.
동준은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치아 상태를 한 번 보고, 머리칼을 뒤로 넘겨 이마와 눈가 여기저기에 꿰맨 흔적이 가득한 얼굴을 둘러봤다.
“...버틸 수 있으려나? 이 몸으로?”
그 옛날 어떤 상대도 마다하지 않았던 동준도 이제는 상대를 봐 가며 매치를 생각해야 됐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문 밖에서 손님이 도착한 참이었다.
“안녕~”
“무슨 일이야?”
“소식 듣고 왔지. 할 말도 있고 해서.”
“잠시만...”
동준은 과일에 순대라는 괴상한 조합을 가지고 온 민아를 방으로 안내했다.

“아까 협회 사람 만나고 왔어. 루이스 애너하임전 대체 선수로 지목됐다며?”
“나 말고 몇 명 있을 거 같은데. 들은 거 있어?”
“어, 너하고 철남 선배, 그리고 케니 존스(Kenny Jones) 역시도 비슷한 오퍼가 들어왔대.”
자신을 포함해 헤비급 랭커 4위와 9위 10위에게 제안한 것을 알게 된 동준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겠네.”
“그렇게 된 거지~ 근데 뛰어줬으면 좋겠다.”
“... 파이트머니 들었나 보구만.”
동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옆에서 계속 순대와 간을 먹는 민아에게 맥주를 건넸다.
“어디서 안주거리만 잔뜩 사 와서... 나는 못 먹어도 한 캔 따.”
“아! 나 최근에 술 끊었어.”
“엉? 맥주 네 캔에 닭 한 마리 뜯던 김민아 씨는 어디 가고?”
“건강관리 좀 하려고 그런다. 왜?”
동준은 실없는 여친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에 맥주를 넣었다.
동준을 민아랑 대화를 한 뒤로 조용히 집까지 바래다줬고, 집으로 가는 길을 조깅 삼아 뛰었다.

용산에서 잠실까지 뛰어서 가는 길에 동준의 품 안에 휴대폰이 울려댔다.
체육관의 우진이었다.
“어, 왜?”
[축하해요. 형님.]
“뭘 축하해?”
뜬금없는 소리에 영동대교를 건너던 동준이 멈춰 섰다.
[아, 아직 이야기 안 나왔나? 서연이가 오늘 집에 와서 엄청 말하던데. 형님, 그거 때문에 이번 경기 꼭 뛰어야겠어요.]
“....야, 주어 빼놓고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냐?”
가뜩이나 생각을 비우고 달리는 와중에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동준이었다.
그러자 우진 역시도 놀란 반응이었다.
[형님, 아직 이야기 안 들었어요? 이상하다? 벌써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 그러니까 뭘?”
[오늘 서연이 병원에 민아 누님 왔었어요. 4주 됐대요.]
순간 동준은 벌써부터 복부를 세게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뭐?”
[오늘 민아 누님 안 왔어요?]
“아니...그게...왔었는데, 그런 말 없었는데? 걔 성격에 떠벌리면 떠벌렸지.”
[어쨌든 축하드려요. 경험자로 이야기드리자면, 장인어른 뵐 때 검은 정장보다 밝은 바탕이 더 좋아요.]
제 3자에게 듣는 소식에 동준은 휴대폰을 잠시 떼어놓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화를 들어 올렸다.
“....이만 끊자. 나 지금 협회에 시합 뛴다고 전화해야겠다.”[그래요. 형~ 축하드려요.]
우진과의 전화가 끝난 뒤로 동준은 다시 용산 쪽으로 달렸다.
“언제부터 그런 걸 뒤로 뺐다고...서프라이즈다 진짜!”




[뮤즈: 송진우 작가]


N. 조우
 

N-1. 아서 플렉의 집 (거울 앞)

-브러쉬 클로즈-
화장용 브러쉬에서 하얀 물감이 뚝뚝 떨어진다.
붓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가 서서히 이동한다.
아서의 분장된 얼굴이 보인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붓은 혀를 내밀고 있는 아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혀에 하얀 물감을 남긴다.
아서의 얼굴은 광대분을 완성하고 만족한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아서 : (초인종 소리).......

아서는 방해받아 불쾌해한다.

N-2. 아서 플렉의 집 (현관)

아서 플렉 :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누구세요?
랜들 : 아 음... 우리야.

아서가 문을 열자 랜들과 게리가 서 있다.
아서는 둘을 맞이하고 집 안으로 이동한다.

N-3. 아서 플렉의 집 (거실)

랜들은 아서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런 랜들을 아서는 가위로 살해한다.

게리 : (겁에 질린 채) 아서!!! 그만! (두려움에 절규하며 흐느낀다.)
게리 :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서 플렉을 피해 거실 구석에 숨으며) 그만해!!! 대체 왜!

아서는 게리를 힐끔 쳐다본 후 광기 어린 표정으로 랜들의 머리를 벽에 찧는다.

아서 : (가쁜 숨을 몰아쉬며) 후.. 게리 놀랐지? 걱정하지 마 후.. 무서워하지 마 널 헤치진 않을 거야
게리 : (잔뜩 웅크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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